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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과 설교행위에 대한 이해

by 행복김 2023.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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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 표지 사진입니다.

 

 

들어가며

 

20세기 최고의 설교자로 불리는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 저술하신 「설교와 설교자」라는 책을 최근에 읽고, 설교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영국에서 출생하여 의사생활을 하다 40세가 되던 해부터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설교자로 활동하였다고 하며, 오늘 소개하는  「설교와 설교자」라는 책은 그분께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것이라고 합니다.

 

책 전체 내용이 전부 주옥같은 내용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저자께서 말씀하시는 "설교문"과 "설교행위"에 대해 정리해서 올려보고자 합니다.  

 

저자는 설교자의 대상은 실제적인 어려움과 곤란에 처해있는 살아있는 사람이며, 설교의 의도는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의 변화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행동의 변화를 의도하는 설교는 '설교문'과 '설교 행위'로 구분된다고 언급합니다. 

 

 

설교문

설교문은 크게 '메시지(내용)''메시지(내용)을 담는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1.  메시지(내용)

메시지(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며, 이것은 다시 구원메시지(전도 설교의 내용)와 가르침의 메시지(성화 및 교육설교)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구분하여 인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며 이 두 가지를 설교와 메시지의 중심적인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합니다. 

 

구원메시지 :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살전 1:9-10; 행 20:17-21), 예수 그리스도(행 17:23)와 하나님의 율법(죄를 깨닫게 함)을 전하는 것이며, 취지에 맞게 다시 설명하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선포입니다.

 

가르침의 메시지 : ‘성도를 세우는' 내용으로 실천을 다루는 가르침(성화)과 교육에 목적을 둔 가르침(하나님의 전체 계획)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강단에 서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 즉 실천을 다루는 가르침과 교육에 목적을 둔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2.  메시지(내용)을 담는 형식

메시지(내용)을 담는 형식은 일차적으로 말하고 듣기 위한 것이며, 언제나 강해로 작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설교는 한 구절이나 단락이나 문단의 의미를 단순히 주해하거나 거기에 줄줄이 주석을 다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주해한 내용은 아래의 특징적인 형식을 가진 메시지로 변경되거나 만들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1) 가장 먼저 자신이 택한 본문의 단락이나 구절을 주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하고자 하는 말이 성경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며, 한 구절이나 단락을 진정으로 이해하여 성경 메시지 전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교리, 특정한 한 교리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 특정한 교리와 듣는 자들의 연관성을 확실히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메시지가 특정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학문적, 이론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 줌으로써 설교자의 메시지가 듣는 자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며 삶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것이기에 전 존재를 다해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그 다음으로 할 일은 그 자료를 명제나 대지, 또는 소제목으로 나누어 중심 교리 내지는 명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도 뚜렷한 형식이 있어야 하는데, 서론에서 중심 주제와 거기에서 파생될 여러 항목들을 간단히 보여준 다음 순서대로 상세히 다루어 나갈 것을 주문합니다. 첫 번째 대지가 두 번째 대지를 이끌어 내고 두 번째 대지가 세 번째 대지를 이끌어 내도록 항목들을 배열해야 한다고 합니다. 각 대지는 다음 대지를 이끌어 내야 하며, 최종적으로 명확한 결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설교자는 모든 항목을 이런식으로 배열함으로써 특정 교리의 중심 사상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설교 행위

참된 설교는 설교문과 설교 행위라는 두 요소가 바른 비율로 결합된 것이며, 이 두 요소는 다 강조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설교 행위에는 '열심과 관심', '뜨거움', '긴박감', '설득력 있는 파토스', '능력' 등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1.  열심과 관심

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설교자가 언제나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설교자 자신조차 사로잡히지 않는 내용으로는 다른 어떤 사람도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에 열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회중을 이루고 있는 각 사람들에 대한 분명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회중에게 인격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일은 없습니다. 설교자는 증인이며, 그것은 예수님이 직접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행 1:8). 이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항상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  뜨거움

열심은 필연적으로 그 다음 요소인 뜨거움으로 연결됩니다. 자신이 말하는 바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당연히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믿는데도 감동받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감동받은 설교자는 반드시 뜨거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통합적인 존재로서 머리뿐 아니라 가슴도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가 참으로 이해하면 가슴도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설교자와 회중은 서로 거리를 두는 관계가 아니라 교감하는 관계입니다. 이 점은 설교자의 목소리에서, 태도에서, 모든 접근방식에서 표출됩니다. 설교자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와 회중 사이에 친밀한 접촉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3.  긴급성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말씀을 선포하라. 때가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고 했습니다(딤후 4:2). 설교자는 영혼을 다루고 있으며, 영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순례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생의 삶과 죽음의 문제 뿐만 아니라 영원한 운명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이 긴급함이 없는 설교자,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 있으며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 말하고 있다는 의식이 없는 설교자는 강단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차분하고 냉정하며 과학적인 거리를 유지한 채 다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4.  설득력 있는 파토스

위와 같이 설교는 긴급성(긴박감)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설득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성공회 설교자로 런던에서 활동했던 리처드 세실(Richard Cecil)은 “설교를 사랑하는 것과 설교 듣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설교자 중 어떤 이들의 문제는 설교는 사랑하되 설교 듣는 이들을 사랑하는지는 늘 주의하여 확인해 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만약 설교자가 파토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 강단에 서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설교에 분명히 나타나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파토스의 요소, 감정의 요소는 설교에 있어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5.  능력

마지막으로 소개할 말은 “능력"입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다다르지 아니하고 권능과 성령님과 많은 확신으로 다다랐기 때문이라. 우리가 너희를 위해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이것이 참된 설교의 본질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개인적 단상

 

사실 요즘 한국 교회에는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말하는 설교와 설교행위에 들어맞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회들도 있지만, 많은 교회들이 물질에 사로잡혀 성도들을 교회의 재정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간주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됩니다.  저는 그 이유가 설교가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가 바로 서면, 사람들이 변화되고, 사람들이 변화되면 사회도 변화게 되는 선순환 효과가 있을 것이지만, 그 반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의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라틴어에 "아드 폰테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말이 아닌가 하는 짧은 생각을 해봅니다.

 

포도나무를 천 위에 수놓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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